대한민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태생의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2000년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협연으로 데뷔했다.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발히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다. 한국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비올라 연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있는 사중주단 중 하나인 타카치 사중주단(Takács Quartet)의 비올리스트로 내정되었고, 악단에 합류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된 한국인 어머니를 입양한 아일랜드계 조부모 사이에서 자랐다. 형편이 안 좋다 보니 조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대학을 보내고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현악기를 연주하면 가능성이 커질 것 같아 5살 때 악기를 추천받았고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악기를 살 돈도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에도 조부모의 헌신으로 줄리아드 스쿨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진학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10년 동안 내 통학을 위해 왕복 200km를 운전해가며 뒷바라지를 해줬다. 할머니에겐 포기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자기연민 같은 건 없고 오로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할머니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며, 할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했다.“죽음을 비극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서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나는 긍정의 힘을 할머니에게 배웠고, 나의 타고난 재능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줄리아드 스쿨에서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 최고 연주자과정)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뉴욕에 거주하면서 예술에 대한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뉴욕시 의회로부터 명예로운 시민상을 받았다. 2007년부터 2016년 까지 UCLA에서, 2014년부터 Music Academy of the West in Santa Barbara 에서, 그리고 현재는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과 2010년에 그래미상 후보에 지명되었고, 세번째로 지명된 2021년 마침내 수상에 성공했다.   앙상블 디토와 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실내악 분야에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젊은 관객층에 어필하며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디토 페스티벌의 기획은 10대, 20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대중문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팬덤 문화를 클래식 음악계로 가져왔다. 2008/2009년 예술의 전당 유료 관객 1위, 누적 100회를 넘는 국내 투어, 도쿄·오사카·상하이 등으로 해외 진출을 했다.   제자들로부터 ‘미친 교수님’으로 불린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배고프니?” “뭐 먹고 싶니?” “페스티벌 참가비가 필요해?”라고 캐묻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자들의 사랑이 특별한데 “어려서부터 많은 분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교회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고 그건 내 개인적인 성취보다 더 행복한 일”이라고 밝혔다. 최종 꿈으로 “내가 세상을 떠날 때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한민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태생의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2000년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협연으로 데뷔했다.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발히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다. 한국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비올라 연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있는 사중주단 중 하나인 타카치 사중주단(Takács Quartet)의 비올리스트로 내정되었고, 악단에 합류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된 한국인 어머니를 입양한 아일랜드계 조부모 사이에서 자랐다. 형편이 안 좋다 보니 조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대학을 보내고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현악기를 연주하면 가능성이 커질 것 같아 5살 때 악기를 추천받았고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악기를 살 돈도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에도 조부모의 헌신으로 줄리아드 스쿨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진학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10년 동안 내 통학을 위해 왕복 200km를 운전해가며 뒷바라지를 해줬다. 할머니에겐 포기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자기연민 같은 건 없고 오로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할머니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며, 할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했다.“죽음을 비극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서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나는 긍정의 힘을 할머니에게 배웠고, 나의 타고난 재능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줄리아드 스쿨에서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 최고 연주자과정)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뉴욕에 거주하면서 예술에 대한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뉴욕시 의회로부터 명예로운 시민상을 받았다. 2007년부터 2016년 까지 UCLA에서, 2014년부터 Music Academy of the West in Santa Barbara 에서, 그리고 현재는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과 2010년에 그래미상 후보에 지명되었고, 세번째로 지명된 2021년 마침내 수상에 성공했다.   앙상블 디토와 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실내악 분야에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젊은 관객층에 어필하며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디토 페스티벌의 기획은 10대, 20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대중문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팬덤 문화를 클래식 음악계로 가져왔다. 2008/2009년 예술의 전당 유료 관객 1위, 누적 100회를 넘는 국내 투어, 도쿄·오사카·상하이 등으로 해외 진출을 했다.   제자들로부터 ‘미친 교수님’으로 불린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배고프니?” “뭐 먹고 싶니?” “페스티벌 참가비가 필요해?”라고 캐묻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자들의 사랑이 특별한데 “어려서부터 많은 분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교회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고 그건 내 개인적인 성취보다 더 행복한 일”이라고 밝혔다. 최종 꿈으로 “내가 세상을 떠날 때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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